메이지대학 역사지리학과 졸업, 여행 잡지기사와 도서편집자 ... 책의 특성상 글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삽화를 통해 독자...
의복 속에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기후 등 다양한 지식이 숨어 있다.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옷은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형태이다. 겉옷은 수많은 유행을 거쳐왔으며 그에 따라 넥타이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남녀 모두가 치마를 입었던 유럽에서는 여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커다란 스커트가 유행했는데 통이 큰 치마 덕에 여성들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바지 또한 동양에서 서양으로 건너온 것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입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속옷의 역사는 길지 않다. 악세사리와 화장, 향수는 본래 실용적...
◈ 저자소개 쓰지하라 야스오 - 문화에서 모든 것을 보는 작가 1948년 히로시마 현 출생. 메이지대학 역사지리학과 졸업 후 다년간의 세계 여행 후, 여행 잡지기자와 도서편집자 등을 거쳐 1985년부터 정보편찬연구소 '견문록'을 주관하고 있다. 또한, 지리서 연구가, 논픽션 작가로서 세계와 일본의 지리서, 생활지리, 국제관계론, 지명연구, 여행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약하고 있다. '지명으로 알아보는 교실 밖 세계사','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일본 여행 문화사전','최신 세계지리 잡학사전','민족문화 박학사전','세계 지명 잡학사전' 등 다수 저서가 있다.
◈ 원페이지북 1. 겉옷의 역사 겉옷은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발전해갔다.
겉옷의 역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우선 우리가 흔히 입고 있는 바지가 등장한 것은 중세 말기이다. 바지는 아시아나 오리엔트 지역의 서민들이 주로 입었다. 중세 말기부터는 타이즈처럼 딱 달라붙는 하의가 유행했다. 하반신에 딱 달라붙는 바지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춰 상의도 꽉 끼고 짧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옷은 생활에 불편을 주었고 16세기 전반부터는 소매, 어깨, 팔꿈치 부분을 절단하고 그 부위에 다른 천을 덧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오늘날의 슈트가 완성되었다.
지금의 신사복이라 불리는 세비로는 프랑스 노동복이었다. 그런 노동복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서민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후 1850년대 영국에서 라운지 재킷이라는 일상복이 나타났고 1870년대 다시 역수입되어 큰 유행을 일으켰다. 넥타이 또한 재미있는 역사가 있다. 13세기 후반, 몸에 꽉 끼는 상의가 유행하자 그에 걸맞은 목장식이 생겨났다. 현재의 가장 대중적인 방법인 '포인핸드'방법은 20세기 전반에 나타난 연출법이다.
중세 초기 서양에서는 남녀 모두 치마를 입었다. 잠시 여성 바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중단되고 말았다. 14세기 중세유럽, 코르셋과 풍성한 치마가 등장했다. 마치 새장을 연상시키는 '빠니에'가 등장했는데 부르봉 왕조의 쇠퇴와 함께 시들해졌다. 하지만 1830년대부터 또다시 크게 부풀린 치마가 유행했고 치마때문인 사고 또한 끊이지 않았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스커트가 짧아졌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이 단순한 디자인의 스커트를 선보였고 이 현상으로 인해 다양한 스타일의 스커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 제복, 민족의상의 역사 제복과 민족의상은 계급과 문화에 따라 발전했다.
제복은 계급의 서열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옷이라고 한다. 중세나 근대의 전쟁에서는 짙은 연기 속에서 군복을 쉽게 구별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했다. 하지만 1880년 이후, 화려한 군복은 오히려 적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848년, 할리 럼스데인이 카키색 군복을 발명했고 그 후 전체 영국 육군의 군복 색상으로 채택되었다. 1628년 현재 세일러복이라 불리는 해군복이 발명되었다. 1864년 영국 해군이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에게 세일러복을 헌상했고 이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세일러복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1901년 재단사 피터 톰슨은 초등학교 교복을 세일러복 원피스로 디자인했고 이것은 큰 성황을 이룬다.
민족의상 중에는 그 역사나 문화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민족의상이 되어 버린 예가 있다. 그것이 바로 하와이에 무무와 알로하셔츠이다. 한국 한복의 기원은 3~4세기경이다. 일본의 기모노는 일본의 고온다습한 여름 기후로 인해 고매가 좁은 고소데가 발명되었다. 그 최종형이 유카타와 진베이이다. 중국의 차이나 드레스는 처음엔 품이 넉넉했지만 1930년대 몸에 딱 달라붙는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아오자이는 예로부터 착용해온 긴 롱드레스에 긴 슬릿을 넣은 것이 지금의 아오자이이다. 힌두 여성들의 전유물 사리는 여성이 허리에 감고 남은 천을 가슴에 감싼 것이 시작이었다. 사리의 원칙은 옷을 고정하는 단추나 끈이 없다는 점이다. 사리와는 조금 다른 이슬람교와 차도르가 있다. 차도르는 종교의 이유로 몸의 굴곡을 타나내지 않고 노출 또한 없다. 차도르는 직사광선과 뜨거운 열에서부터 몸을 보호하려 만든 망토가 이슬람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3. 속옷과 잠옷의 역사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속옷과 잠옷을 입지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착용하기 시작했다.
속옷의 시초는 5세기경이다. 14세기부터 서서히 속옷이 독립된 의복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중세 이전에는 가슴을 드러내고 한층 돋보이게 했다. 가슴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아포디스라는 붉은 리본을 유방 밑에 감았는데 이것이 브래지어의 시초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 전성시대에는 금욕주의가 퍼졌다. 그래서 유방을 들어내는 것이 사라지고 13세기 중반에는 '억압'이라는 뜻의 코르셋 원조가 탄생했다. 19세기 중반, 여성의 가슴을 풍만하게 보이게 하는 브래지어의 전신이 고안되었다. 1889년에는 브래지어에 어깨끈이 개발되었다. 브래지어란 말은 1904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1926년에는 끈 없는 브래지어가 개발되었고 1935년에는 가슴의 크기에 따라 A,B,C 컵이 나누어지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팬티를 입지 않았다. 중세 말기 남성들은 속바지인 드로어즈를 착용했는데 여성들은 잘 입지 않았다. 1830년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패션이 시작되었다. 이때 미국에서 태어난 어밀리어J. 블루머 부인은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여성복을 주장했고 1848년 엘리자베스S. 밀러 부인이 개발한 여성용 팬티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거부당했다. 현대의 팬티가 나온 것은 1924년 경이었다. 전신 드로어즈가 다양한 모양으로 재탄생되었고 그것이 팬티가 되었다.
우리가 잠을 잘 때입는 잠옷의 탄생은 16세기 전반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난방 시설이 개발되기 전이었기에 따뜻하고 편안한 잠옷을 추구했다. 이렇게 최초의 잠옷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다. 1880년대 인도에서 파자마라는 잠옷이 유럽으로 수입되면서 잠옷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소수 고위층에 대한 유행이었으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서민들 사이에서도 잠옷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4. 악세사리, 화장, 향수의 역사 현재 우리가 아는 악세사리, 화장, 향수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동방과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실크가 유럽으로 수입되었고 실크로 장식품이 고안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손수건이다. 그 당시는 실크의 가격이 비쌌으므로 손수건은 사치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기원전 5세기경 여행자들을 뜨거운 햇볕이나 바람에서 보호하기 위해 챙이 있는 모자가 개발되었다. 이처럼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이던 모자가 14세기 네덜란드에서 드디어 패션의 일부분으로서의 모자가 탄생했다. 가발은 매너와 신사로 통했기에 크게 성행했지만 가발에 대한 희귀성이 없어지면서 점차 가발을 쓰는 사람들이 줄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악세사리들은 사실 주술적인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질병과 죽음을 막지 못하자 가장 아름다운 것을 몸에 지녀 악령을 대항하려는 생각하게 되었고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진주 등 각종 보석을 몸에 지녔다. 보석이 장신구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였다.
화장도 역시 처음엔 눈을 보호하고 방한 등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점점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심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 아이라인은 존재했다. 하지만 아이라인의 용도는 마귀 퇴치나 벌레로부터의 보호와 같은 목적에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콜'이라 불리는 아이섀도를 칠했는데 이것 또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그 후, '콜'은 점점 멋 내기용으로 발전되었다. 시간이 흘러 1950년 미국에서 메이크업의 포인트가 입이 아닌 눈으로 옮겨 가면서 아이섀도를 사용했고 이것이 본격적인 아이섀도의 등장이다.
향수의 기원은 고대 제물을 바칠 때 나오는 악취에 예배자의 몸에 배기 시작했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것이 향수이다. 16세기 프랑스에서도 향수는 냄새를 없애는 소취제로 사용되었다. 그 이유는 속옷을 빨아 입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은 목욕하지 않았고 몸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진한 향수를 애용하게 되었다.
◈ 서평 옷 속에 감춰진 보물을 찾아서 민족의 역사와 문화, 사상을 가장 잘 반영된 것은 의복이다.
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가는 등 주말부터 갑작스레 찾아온 여름 날씨에 사람들의 옷차림이 얇고 짧아졌다. 특히 짧아진 것이 여자들의 하의. 사실 하의실종 패션은 지난겨울부터 추운 계절이 무색할 만큼 부지런히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봄이 오면서 컬러 스키니 진과 롱스커트 등에 밀려 주춤해진다 싶더니 도리어 완전한 하의실종 패션으로 나타났다. (중략. OSEN 2012.05.01)
지난여름,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에 이어 '하의 실종'이라 불리는 짧은 바지 스타일이 유행했다. '하의 실종' 이란 짧은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덮는 상의를 입음으로 하의를 입지 않은 듯한 패션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이 보기엔 이런 패션이 불편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패션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옛날보다 기온이 조금 올라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사상 변화가 이러한 의복의 변화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옛날과 현대의 문화적 사상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 '하의 실종'스타일을 봤을 땐 선뜻 호감이 가지 않았다. 낯설다는 이유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러한 패션이 점점 성행함에 따라 어느새 유행에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살을 찌푸렸는데 말이다.
이처럼 의복은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역사에 따라 의복이 바뀌기도 하지만 의복이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도 한다. '문화와 역사가 담긴 옷 이야기'에서는 옷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이 시대에 옷이 담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와 문화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다.